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가 한 외국 여기자와 인터뷰했을 때 일이다. 기자는 1달러를 구걸하느라 아우성치는 국민의 비참한 생활, 황제 보좌관이 쿠데타를 시도했던 사건처럼 껄끄러운 질문부터 던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화를 내며 화제를 돌리던 황제는 결국 폭발했다. “이 여자 누구야? 어디서 온 여자야? 꺼져. 이제 끝이야!” 그 여자는 오리아나 팔라치였다.
▶이란혁명 직후인 1979년 팔라치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를 만났다. 그녀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 문제를 따지면서 도발적으로 물었다. “차도르를 입고 어떻게 수영을 합니까.” 호메이니는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다. 이슬람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않으면 된다”고 되받았다. 팔라치는 “그렇다면 이 시시하고 고리타분한 걸레조각을 당장 벗겠다”며 예의상 입었던 차도르를 벗어 던졌다. 격분한 호메이니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팔라치는 헨리 키신저를 만나서는 느닷없이 “대통령보다 큰 명성과 인기를 누리는 이유가 뭔가요”라며 슬쩍 비위를 맞췄다. 키신저가 덥석 미끼를 물었다. “중요한 건 내가 항상 혼자 행동한다는 겁니다. 미국인은 말 타고 혼자 맨 앞에 서서 마차행렬을 이끄는 카우보이를 좋아합니다.” 이 말을 두고 “대통령도 무시하고 혼자 잘난 척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키신저는 “팔라치를 만난 것이 평생 가장 멍청한 일이었다”고 후회했다.
▶팔라치는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고 거침 없고 공격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인터뷰 모음집 서문에 “나는 수천 가지 분노를 가지고 인터뷰에 임했다. 그 수천 가지 분노는 수천 개 질문이 되어 내가 상대에게 공격을 퍼붓기 전에 먼저 나를 공격했다”고 썼다. 미리 꼼꼼하게 준비를 쌓아 스스로 확신을 갖고 인터뷰 상대를 치고 들어갔다는 뜻이다.
▶팔라치의 혹독한 질문을 겁내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는 정치가가 잇따랐다. 대신 팔라치 스스로가 인터뷰 대상이 됐다. 그녀는 베트남과 중동을 누빈 종군기자이자 ‘한 남자’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나는 내가 쓴 글처럼 산다. 나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고 했던 팔라치가 암으로 떠났다. 그녀에겐 흔히 ‘신화’니 ‘전설’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삶을 신비롭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를 내내 빛낸 것은 권위에 몸사리지 않고 위선을 벗겨내던 용기였다.
(김기천 논설위원 [ kckim.chosun.com])